참여작가 올리비아 로드 배스

일시 2023년 11월 10일-26일

기획 00의 00

권정현

전시 소개 글 김민(00의 00)

포스터 디자인 U.F.

전시 디자인 만선 스튜디오

후원 덴마크 예술재단

주최/주관 00의 00

장소 00의 00

사진 박도현


전시개요

올리비아 로드 배스의 개인전 <불붙은 나뭇가지와 손에 피어나는 꽃들>은 역사와 신화 속의 모티프로서 ‘불로 태우는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오늘날의 차별과 갈등을 반전시키는 새로운 연대의 풍경을 상상한다. 조각과 태피스트리, 드로잉 등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북유럽 전통 의례, 지역의 자연물, 유럽의 전통 복장, 사회적 사건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커다란 불이 활활 타오른다.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덴마크에서는 해가 긴 하지 즈음의 성 요한 탄신일에 맞춰 불을 피우고 손을 맞잡고 돌며 춤을 추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캠프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이 유쾌한 의례는 오늘날에는 즐거운 축제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마녀로 몰린 여성을 불태워 죽이는 살인의 현장이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집단의 폭력과 광기가 만들어낸 참혹한 소멸의 자리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축제에서도 때로 마녀를 상징하는 허수아비를 불태우며 혐오를 유희하는 죄악의 역사를 이어가고는 한다. 배스는 그 전통을 모티프로 현대적 모닥불 의식을 치른다. 태피스트리로 직조한 풍경이 모닥불처럼 피어오르고 소멸 뒤에 남은 재처럼 자연물이 흩어져 존재한다. 건물 사이로 자동차가 불타 떨어지고, 그 주위로 장식적인 신발을 신은 이들이 손을 맞잡고 돌며 춤을 춘다. 그 신발은 궁정광대의 방울 달린 신발이기도 하고 노동자가 신던 나막신(sabot)이기도 하다. 마녀를 대신하는 허수아비는 새로운 생명을 보듬기라도 하듯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 주위로 모래와 돌, 풀과 꽃, 나뭇가지와 갈대가 흩어져 소멸의 자리를 감싼다. 그것은 모든 것이 타고 난 뒤의 쓸쓸한 폐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물이 언제나 지니고 있는 치유의 힘을 언뜻 내비친다.

배스의 작품은 씨실과 날실로 엮인 태피스트리의 짜임처럼 뒤엉켜 이어져오는 차별과 억압을 가시화한다. 이 차별과 억압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며, 오늘날 새로운 ‘마녀들’을 향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나이든 여성, 유색 여성, 빈곤 여성, 원주민 여성, 이민자 여성을 향할 뿐만 아니라 여성에 국한되지 않은 성소수자, 저소득층, 노동자, 이민자 등의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이어진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따뜻한 손’은 덴마크에서 간호사를 포함한 돌봄 노동 종사자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의료술을 가리키는 ‘차가운 기술(cold technology)’과 대비되어 엄마의 손길처럼 따뜻하게 환자를 어루만지는 간호사의 역할을 표현한다. 그 말은 간호사에 대한 찬사처럼 들리지만, 실은 간호 노동의 전문성을 숨기는 차별적인 표현이다. 배스는 그 양가적이고 애매한 표현 아래에 깔려 있는 차별의 구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화와 정치가 뒤섞여 펼쳐지는 현대적 제의다. 여성의 수공예적 노동을 상기시키는 태피스트리와 나무를 깎아 만든 부조, 일상에서 주워 모은 자연물이 어우러져 소멸을 위로하고 생성을 기원한다. 모든 것이 타고 남은 잿더미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고대하며 염원한다. 신발을 신기고 실을 감싸고 꽃과 나무를 두르며 소멸의 자리를 어루만지지만, 부드럽다기보다는 강인하고 기이한(queer) 손길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슬픔의 자리는 저항의 전초기지가 되고, 억압의 상징은 반란의 이미지로 변모한다. 이 유쾌하고 두려움 없는 마녀는 작품 곳곳에 숨겨있는 유머러스한 미소가 상징하듯이 폐허에서 다시 생명이 싹트기를 유쾌하게 긍정한다. 배스는 ‘마녀’라 불리며 핍박받은 여성들부터 ‘따뜻한 손’으로 불리며 차별받는 여성들까지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이름 불리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조한다. 이로써 그들이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미래를 그려나간다. 그녀의 작품 제목 “슬픔은 꽃이 피어나는 곳”처럼 재가 된 자리에서 새롭게 피어날 연대의 싹을 기다린다.

-권정현(독립기획자)